응답하라 1988 풍경으로 본 세가지 인기요인
쌍문동 10통2반 골목, 1988년 거기 사는 성덕선이 999등을 하고, 한국 대표로서 유일하게 남았던 최택 사범이 한중일 바둑대회에서 우승했다. 우리 곁에 금방 1988년이 왔다 갔다.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신원호 연출, 이우정 극본)가 17일 20화를 마지막으로 종방했다. 그 1988년을 보며 우리는 라미란 여사처럼 갱년기를 보냈다. 웃다가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팬들은 어느 때보다도 열정적이되 ‘논리적’이었다. ‘어남택’(어차피 남편은 택), ‘어택류’로 갈려 그러해야 하는 이유에 열변을 쏟고 한편에서 ‘어남동룡’도 가세해 응원했다.
‘응팔’은 <티브이엔>(tvN) ‘응답하라’ 시리즈의 세번째 편이다. 2012년 <응답하라 1997>이 이례적인 성공을 거둔 뒤 2013년 <응답하라 1994>는 전편을 뛰어넘으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27년 전으로 돌아간 ‘응팔’은 우려 속에서 출발했다. 주인공인 1971년생은 드라마의 주시청층을 벗어난다는 점, ‘가족’이라는 설정이 시청률을 얻기에는 수수하다는 점, 당시의 엄혹한 시대상을 트렌디 드라마가 어떻게 녹일 수 있을까 하는 점 등이었다. 무엇보다 비슷비슷한 설정으로 뼈대를 세운 세번째 시리즈에 시청자가 다시 한번 젖어들 수 있을까에 물음표가 찍혔다.
‘응팔’은 ‘남편 찾기’는 여전했지만 이전과 달리 ‘유능인 vs 유명인’ ‘츤데레 vs 솔직남’의 대결에서 유명인·솔직남이 선‘택’되었다. 그 외에도 ‘응팔’이 시리즈에서 달라진 점이 보인다. 이 달라진 점이 기억할 수 없기에 젖어들기도 어려울 것 같던 1988년이 ‘국민 공감 시대’로 떠오른 이유이기도 하다.
비슷한 설정 세번째 시리즈임에도
마지막 시청률 19.6% 케이블 기록
남편찾기 넘어 시대아닌 시절담아
■ 골목에 놓인 평상 브라질 사람들이 ‘응팔’을 보면 어떨까(쌍고·쌍여고 학생들이 자주 가는 ‘브라질 떡볶이’에서가 아니라). ‘응팔’은 ‘유니버설’하지 않은 추억에 호소한다. 1997년의 아이돌에 대한 열광이나 1994년의 프로야구·농구 붐 등은 ‘세계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1988년의 올림픽에 대한 한국인의 기대와 열광은 미국이나 서구 등 다른 어디에 내놓으면 이해가 가지 않을 ‘촌스러움’이다. ‘골목에 놓인 평상’과 ‘차라리 모여서 먹지’ 하는 반찬 나누기도 마찬가지다.
이전이 1994년 세대, 1997년 세대의 드라마였다면 ‘응팔’은 부모 세대의 드라마다. 그러니 드라마는 제목에 표시한 ‘1988년’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 덕선은 20화 내레이션에서 말한다. “단지 지금보다 젊은 내가 보고 싶어서가 아니다. 내 아빠의 청춘이, 엄마의 청춘이,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청춘이 있었기 때문이다.” 19화에서 아버지 성동일은 “‘화무십일홍’이라고 들어봤는가”라는 대사를 한다. ‘청춘’은 맨 처음에 녹음된 삽입곡이었다.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이전 시리즈의 주조인 ‘그리움’은 더 진화했다. 푸르른 ‘청춘’은 돌아올 수 없기에 간절하다.
■ “왜 나는 계란 후라이 안 줘” 눈물은 힘이 세다. 그 시절의 촌스러움과 환기되는 정서에 손발가락이 없는 듯이 오글거리다가도 눈물을 한 바가지 쏟고 나면 우리는 무릎을 꿇고 만다. 1화부터 ‘한 회 한 번 이상 눈물’ 법칙은 관철된다. 남자가 되어가는 아들을 가르치지 못하는 것에 선영은 울었고, 집에서 당하는 설움이 폭발한 둘째 덕선은 “왜 나는 계란후라이 안 줘”라며 운다. 할머니가 죽고, 죽은 엄마가 매일 그립고, 시어머니가 구박을 하고, 어머니 때문에 생일에 왠지 힘이 없어진다. 19화 갱년기 라미란 여사와 명퇴한 성동일 한일은행 과장 중 누가 먼저 울까 궁금해지는 집단 울음 장면도 여럿 만들어졌다.
■ 첫눈 오는 날 김정봉은 동생 방으로 들어오며 말한다. “동생, 밖에 눈…” 순간 정봉은 서랍장에 무릎이 부딪히고 말을 잇지 못한다. 이 말만 들은 정환은 창문 커튼을 빠르게 걷어 밖을 본다. 정환은 첫눈 오는 날 선우가 덕선에게 고백할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정봉의 이어지는 말은 “…이 올지 모르니까 형을 꼭 깨워줘”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는 마지막회 이후 트위터에서 이렇게 말했다. “덕선의 성장담이어야 하는 드라마가 매회의 추리적 요소 때문에 여주인공의 관점을 숨겨두었기 때문에 벌어지는 혼선임. 즉 응팔은 추리적 요소인 예능과 드라마의 기본이 충돌한 것임.”
‘응팔’은 ‘예능 드라마’다. ‘떡밥 잔치’다. 시리즈를 관통하는 ‘남편 찾기’ 수수께끼 외에 ‘응팔’의 한 회마다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야기를 던진다. 11화 첫 장면에서 골목 아줌마 3인방에게 점쟁이가 말하는 대목은 편집된다. 13화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왜 제목에 슈퍼맨이 있는지는 리와인드 장면을 통해서야 알려진다. 9화에서도 택이의 중국 바둑 경기를 따라간 덕선이 한 기특한 일은 끝부분에야 밝혀진다. ‘응팔’의 기억에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극의 진행에서 보였던 장면은 회상 장면에서 다시 그 일상의 순간을 ‘비범한’ 순간으로 바꾼다. 사랑 고백 뒤 회상 장면은 새로운 장면 컷을 편집하여 보여줌으로써, 이전과는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팬들의 열정도 이런 수수께끼로 인해 강화된다. ‘예능 감각’은 공감하기 어려운 세대 입에 떠먹여주는 ‘눈사람’(아이스크림)이었다. 정서를 고조하기 위해 ‘응팔’은 철저하게 계산적이었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김정봉. 사진 티브이엔 제공
마지막 시청률 19.6% 케이블 기록
남편찾기 넘어 시대아닌 시절담아
사진 티브이엔 제공
‘응답하라 1988‘ 등장인물들. 사진 티브이엔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